장수제의 블로그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책을 읽고 : 2009/09/19 00:31


요즘 읽고 있는 소설입니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네, 제목에서 딱 드러나는 것처럼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원작으로 하는, 아니 원작으로 한다기 보다는 그걸 개작한 소설입니다. 저작권이 풀린 책이라서 가능한 일이었죠.

굳이 개작이라 표현한 이유는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 성격, 그들간의 갈등이라는 원작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만과 편견> 자체가 그런 면에서 걸작으로 손꼽히는 거라서, 작가 입장에서는 그걸 버릴 수 없었겠죠.

하지만 원작의 갈등 구도에서 전혀 다른게 끼어듭니다.
바로 좀비죠.

분명히 나오지는 않지만, 영국에는 언제부터인가 좀비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병의 형태로 알려져 있으며, 일반적인 좀비물처럼 좀비에게 물리면 역병에 감염됩니다만 그 변화 속도는 꽤 느린 편입니다 (며칠~몇달). 이 역사가 좀 되다보니 영국의 문화는 완전히 변한 상태. 당시 귀족들이 전쟁에 나가서 전공을 쌓는게 수순이었듯이(물론 이건 영국의 경우에는 차남 이하에 해당되었지만), 소설에서는 신사 계급이나 심지어 숙녀들 역시 '교양(!)' 수준으로 무술을 익히며, 10살쯤 되면 좀비 한두마리 목은 베었어야 인정받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전통적인 영국의 무기보다는 (기껏 나오는 건 머스켓 총 정도) '동양 무술'로 좀비를 퇴치하는게 대세. 주로 중국과 일본에서 배워옵니다. 하지만 약간 불만인 건 작가가 착각을 했는지, 아니면 원래 외국 문화라는게 들어오면 뒤섞이는 것 자체를 구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중국에서 무술을 배운 엘리자베스가 무려 '카타나'를 들고 싸워서 -_-;

여하튼 주인공 5자매는 아버지의 교육과 노력으로 장난 아닌 좀비 사냥꾼 수준...

남주인공인 다아시 역시 제일가는 헌터로 꼽히죠.

나름 괜찮은 개작인 게, 원작의 갈등 구도에 자연스럽게 좀비라는 새로운 아이템을 추가했고, 그에 따라 변화한 영국의 문화를 꽤 디테일하게 그려 내었습니다. 심지어 신사 숙녀들이 모여서 하는 게임이 "납골당과 관" 이라던가, 일본 무술을 배우면서 유입된 문화의 영향으로 대저택 안에 신사가 있다던가, 숙녀들이 부르는 노래가 좀비 사냥 노래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죠.


하지만 작품은 한계를 꽤 뚜렷하게 드러내긴 합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문화적 코드의 뒤섞임도 그렇고 (세상에 기모노를 입고 전족을 하고 있는건 또 무슨 센스), 아이디어는 참신하나 읽으면 수준이 떨어진다는게 불행히도 느껴지죠.

더군다나 바로 전에 읽은 책들이 댄 시몬스의 <일리움>, <히페리온>이다보니 더욱더 대비가 되고..
등장인물의 대화도 좀 평면적이구요.

아이디어는 좋고, 전개는 스피디하지만 아주 좋은 작품은 아니라는 결론입니다. 어딘가의 리뷰처럼 책장 넘기는 거 자체가 고통스러운 정도는 아닙니다만, 굳이 원작과 대비해서 읽는 건 쓸데없는 수고일 듯 합니다. 그러면 100% 실망하실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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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9 00:31 2009/09/19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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