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에서 과학적 개념과 사실판단에 대한 회로를 닫는다. 주의할 것은 "완전히 닫아야" 한다는 점이다. 평소 헐리우드 영화 수준으로 생각하고 적당히 닫았다가는 영화적 재미가 날아갈 수 있다.
- 스토리 및 캐릭터: 사실 이 영화에서 그런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건 마치 쥐가 목욕을 하고 집에 들락거리는 걸 바라는 것과 같다. 주인공이 있긴 하지만 정말 얄미울 정도로 잘 살아남으며, 나머지 이야기는 일반적인 킬링타임용 전쟁소설처럼 진행된다. 즉, 이 영화의 중심 사건은 절대적으로 재난 그 자체이다. 등장인물은 그것을 보여주기 위한 소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2. 간단한 감상 및 추천관객
- 오락영화로서 재미는 있습니다. 다만 그 재미라는 것이 시청각적 스펙터클 위주의 재미이므로 그런 류의 재미가 지루하신 분들은 보시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 등장인물에 대한 쓸데없는(?) 감정이입을 안하고 보니 편하더군요. 워낙에 많이들 죽어나서.....(거의 행성 하나 전멸이니)
- 개인적으로는 이정도면 그냥 볼만한 오락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롤랜드 애머리히표 영화가 이 정도면 잘 만들어진 거죠.
- 물량 하나는 엄청납니다. 가능한 최신 시설을 갖춘 큰 극장에서 보시길 권합니다. 저도 일부러 먼 곳에 있는 대형극장에서 봤습니다만, 오간 시간이 아깝지 않더군요 (작은 극장에서 보신 분들은 상대적으로 별로라고)
이하는 강력한 스포일러입니다만..(사실 이영화에 대해 스포일링을 하려면 장면을 보여줘야합니다.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스포일링 하기 힘들어요 -_-)
more..
다들 찜찜하셨을 부분, 방주를 만들고 거기에 탑승할 사람을 정하는 과정이었을 겁니다. 있는 자들만이 탈 수 있었죠. 10억 유로 없으면 루저에요.
제가 SF를 좀 좋아하는데, SF에서 많이 써먹는 사건이 하나의 종, 또는 하나의 행성에 있는 지적 생명체 전체의 절멸이죠. 이 과정에서 지적 생명체 집단은 어차피 개인은 보존하기 힘들어지니까, 극단적으로 '종의 보존'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 단계로 가면 인간의 존엄성, 권리 이딴거 다 따질 수 없게 되죠. 최소한 이 부분에 한정해서는 영화에 나왔던 과기부 장관의 말이 맞습니다 (물론 문제는 실제적으로 뽑는 기준이 종 보존 측면에 맞지 않았다는 거구요). 종을 보존해야 하므로 기준은 매우 냉혹해야 합니다. 너무 늙어서도 안되고, 반대로 너무 어려서도 안됩니다. 유아와 노약자는 생존 확률이 낮고, 그 가치(!)에 비해 들어가야하는 자원이 많습니다. 젊은이라고 다 되는 건 아니죠. 저같은 약골은 살려둬서는(!) 안될 겁니다. 뒤에 닥칠 위기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고, 위기가 다 한후 건강한 자손을 번식(!)시킬수 있는 건강한 선남선녀여야 합니다. 거기에 더해, 재산 정도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기준이 됩니다. 지구가 뒤집어졌는데, 달러가지고 뭐할겁니까. 그걸로는 밑도 못 닦습니다 (헐어요;;). 오히려 부유층 중에는 약골인 사람도 많을 수 있으니, 재산은 기준이 될 수 없죠. 체력, 유전자(시간이 있으면 유전자도 검사해야 함), 건강상태, 지적 능력 및 수준이 가장 절대적인 기준이 될 겁니다. 냉혹하죠.
하지만 영화에서는...다들 아시다시피 저런 기준으로 뽑지 않았습니다. 장관이 처음에 에이드리언 박사에게 유전자 등등을 고려했다고 하지만, 그 말은 누가봐도 멍멍이 소리죠. 딱 봐도 부자들만 뽑은게 티가 나죠.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그들의 돈이 아니면 이 방주를 비밀리에 만들 수는 없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예산전용을 했다면 기자들이 바로 냄새를 맡았을 거고, 세상은 대혼란에 빠졌겠죠. 어찌 보면 그 상황에서 질적으로 어떻게 되었든 인간이라는 종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합리적 수단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요. 장관이 지껄여댄 말 중에 하나 또 맞는 말이 이거죠.
"그럼 다같이 손 잡고 찬송가라도 부를 줄 알았나?"
멸망의 순간을 그린 작품은 많습니다만, 대부분 상황은 카오스입니다. 침착하게 멸망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폭도 10명만 있어도 동네는 아수라장이 되죠. 더군다나 무슨 지진에 홍수만 나면 폭동에 약탈의 천국이 되는 미국인의 관념에서는 더 했을 겁니다. 최소한 그런 면에서 유교/불교 문화권의 동아시아는 놀라운 사례긴 하죠. 관동대지진 같은 고의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최소한 대규모의 혼란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카오스와 아나키가 판을 칠 것이 뻔한 상황에서, 부자들의 돈을 긁어모아 방주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은, 어찌 보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내적 모순과 한계를 단번에 드러내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식 수준에서의 인지가 드러난 결과였을 수도 있구요.
기분은 나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그런 설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대의 리얼리티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있는 자가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죠. 물론 준비조차 할 수 없는 극단적인 종말의 순간에서야 똑같겠지만, 조금의 여지라도 있다면 정보의 질적 측면을 물론이고 대처 방안의 강구라는 측면에서도 부유층이 유리한건 자명합니다. 그게 옳다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결과가 나올 거라는 겁니다.
즉, 어찌 보면 그런 설정은 롤랜드 에머리히 나름의 리얼리티였을 수도 있다는 거죠.
물론 에이드리언의 감격적인(!) 초딩 수준의 인류애 강연에서부터 헐리우드가 개입하지만요 -_-;
네, 그냥 뻘소리에요 :)
ps. 그 감동적 연설 장면에서도 오역이 보이더군요. 에이드리언은 humanity (인류애)를 강조했지만, 장관은 humankind(인류), 즉 종의 보존 측면에서 '어쩔 수 없다'라는 논리로 맞섰습니다. 근데 둘다 인류라고 번역하니 말이 이상해졌어요 -_-; 문맥상 짐작은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나름 신경 쓴 단어 선택인데 자막에서 무참히 사라지니 허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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